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클라마칸 사막 (문단 편집) == [[실크로드]] == 지금은 허허벌판이지만 과거에는 [[실크로드]]를 잇는 동서 간 교통로의 중심지였기에 수많은 크고 작은 도시국가와 군소왕국들이 사막위에 군림하였다. 실크로드는 크게 5가지 루트가 있고 북부 초원을 가르지르는 길과 인도를 거쳐 가는 바닷길을 제외한 육로는 3개가 남는데, 그 중 텐샨 산맥 북부를 거쳐가는 길(턘샨 북로)을 제외하면 나머지 2개의 루트가 이 타클라마칸 사막([[타림 분지]]) 가장자리를 따라서 형성된 [[오아시스]] 도시들을 선으로 잇는 길이다. 특히 상술한 톈샨 남로와 쿤룬 북로는 한-당 시대 1천 년을 넘는 기간 동안 동서 문명의 결절점 역할을 했기 때문에 교역의 중심에서 번영을 누리기도 하였으나 이후 동서 교통로가 단절되어 가면서(+ 해양 교역로가 발달하면서) 서서히 몰락하였다. 때론 중국, 때론 유목민, 때로는 아랍, 때로는 [[티베트]]의 영향을 받으며 수많은 문화가 융화된 곳이기도 하며, 폐허뿐인 여러 유적들이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버려져 있다. 사막화되면서 실크로드 문명이 소멸했는데, [[마르코 폴로]]가 이곳을 지나면서 [[동방견문록]]에 현재 기준에서 보면 허황되어 보이기까지 하는 설을 많이 풀었고, 이 때문에 중세부터 이곳은 서양에 신비감을 불러일으켰다. 서구의 학자들이 큰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바닷속에 빠져버린 아틀란티스처럼 실크로드 문명들은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소멸되었다" 라고 묘사되었으며, 이는 탐험가들과 역사학자들을 고무시켰다. 18~19세기는 사실상 지구의 고봉들과 양 극지방이 인간에게 완전히 "정복"당한 때였고, 아직 신비에 싸여있는 타클라마칸은 이러한 탐험가들과 역사학자들에게 매력적인 탐험지였다. 수많은 탐험대가 모래 속에 묻혀있을 고대도시와 유물들을 바라고 이 지역을 방문했고, 측량을 하고, 탐사작업을 벌였다. 가장 유명한 사람이 [[스웨덴]] 탐험가 스벤 헤딘(1865-1952)이다. 지리학적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막 탐험이 성과를 거두었을지는 몰라도 유럽인이 기대한 것과 달리 고대의 유물과 유적들은 쉽게 나오지 않았고, 모래바람에 순식간에 매장당했다는 환상도 깨져 실크로드 문명권의 붕괴와 함께 서서히 몰락했다는 것을 인지한다. 현지인들은 이를 이용해 조작한 가짜 유물을 팔아넘기기도 했고, 이것들은 진위가 불분명한 채 다른 유물과 섞여 유럽의 유명한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기도 하다. [[유럽]]인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한 신비롭고 웅장한 고대도시 유적은 없었지만 문화학적으로, 인류학적으로 중요한 유물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기타 유물들도 많이 발굴되는 편이라 역사학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막고굴|둔황석굴]]이 유럽인들에게 순차적으로 털린 것도 이때쯤이다. 알베르트 폰 르콕이 [[독일]]로 가져간 베제클릭 석굴의 벽화는 [[2차대전]] 중에 연합군이 [[베를린]]에 폭격을 쏟아붓다가 박물관이 날아가는 바람에 소실되어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놀랍게도 우리나라 역시 돈황석굴의 유물을 보관 중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돈황석굴에서 떼어 온 벽화 한 점이 보관 중인데 일본이 가져와 [[서울대학교]](당시 [[경성제국대학]])에 보관하다가 해방 때 그냥 두고 가버린 '오타니 컬렉션' 중 하나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항목 참조. 이후 중국 정부와 학계에 의해 연구가 진척되며 [[누란의 미녀]], [[소하공주]] 등 고대 미라가 발견되기도 했다. 특히 중국 정부는 위구르 문제와 연계하여 이 곳을 중국 역사에 온전히 편입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 역덕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이 곳은 중국과 교류하던 방계의 역사일 순 있지만 이 곳을 중국사로 온전히 편입시키려는 논리에 의하면 한국사나 베트남사도 중국사에 속한다는 논리도 사실이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 ~~뭐, 고조선과 남월이 한나라에게 망하기는 했다~~ 다만, 막상 [[중국]]의 주류 [[고고학|고고학계]]와 [[인류학|인류학계]]는 [[중국 공산당]]과 이들에게 충성하는 어용 학자들의 주장에 반대하여, [[소하공주]]가 [[시베리아 원주민]]과 친연관계에 있는 [[선사 시대]] 정주농경민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거나, 통념과는 다르게 [[한족]]의 발원지가 [[중원]]이 아니고 [[중국 신화]]에 비(非) 한족계 민족들의 신화의 요소가 대거 차용되었음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를 내놓아서, 중국 공산당을 여러 차례 엿먹인 적이 많다.] 1978년 [[NHK]]의 다큐멘터리 [[실크로드]]가 냉전 치하의 폐쇄적이던 당시 중국의 [[덩샤오핑|개방물결]]을 타고 타클라마칸의 유적들을 탐사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는 NHK에 중국 CCTV, 한국 KBS까지 참여해서 신 실크로드 10부작이 제작되기도 했는데 이 시리즈에서는 소하미녀를 HD화질로 찍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